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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--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-

공수거 2013. 1. 4. 22:33

2013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-

    이끼의 시간

----  김준현

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


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

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

뜨거나, 닫아놓은 창이다

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

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

젖은 눈으로

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, 장마철이다

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

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, 거친

수염을 민다

드러나는 싹이여, 자라지 마라

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

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

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

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

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

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

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

소름이 돋는 중이다